최근에 구입한 유럽의 기차 행선지 표시판 모음 철도 (지하철포함)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교통수단, 특히 기차에는 필수적으로 기차의 출발지와 도착지를 표시하는 행선지 표시판이 있기 마련입니다.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행선지 표시판 자체에 주목하는 경우는 철도를 좋아하는 애호가들 외에는 별로 없지요.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용도폐기되는 열차나 버스에 사용하는 행선지 표시판을 몇 장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주로 국내 철도나 버스의 행선판을 가지고 있지만, 소위 롤지라고 부르는 행선지표시막 중엔 일본에서 사용하던 물건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제는 한국과 일본의 행선지 표시판 뿐만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 유럽의 철도 행선판도 제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작년 (2016년) 유럽철도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독일을 다녀온 여행 선물이라고 A4사이즈의 플라스틱 판 한 장을 건네준 것이 발단이 되었네요.
발단은 독일에 다녀온 친구가 건네준 바로 이 녀석

현역 철도 기관사인 친구가 유럽철도여행을 하면서 독일 뉘른베르크의 철도박물관을 갔는데, 박물관 기념품 샵에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독일 철도 행선판을 파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독일의 철도 행선판은 A4크기에 플라스틱 판으로 되어있는데 가격은 1~2유로 정도라고 해서 부담없이 구입해와서 여행 선물로 저에게 전해준 것이지요.

뜻밖에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 운행하던 열차의 행선판을 선물로 받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제가 가보지 못한 나라, 제가 모르는 언어, 제가 알지 못하는 풍경을 보았을 이 녀석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독일어를 모르지만 아무튼 인터넷을 켜서 정보를 찾아봅니다. 독일어로 행선판은 Zuglaufschild라고 하더군요. 유럽 철도의 열차 행선판도 처음에는 철판에 고리가 있어서 열차 외부에 걸어놓는 형태로 사용하다가 A4크기의 플라스틱 판이나 마분지 재질로 객차 출입문 유리창에 부착하는 것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행선판은 뮌헨발 슈반도르프행 인터레지오 열차에 쓰던 물건이네요. 옆에 날짜를 보니 2000년 4월에 만들어진 겁니다. 독일어와 영어 웹에서 찾은 정보를 조합해보니 지금은 독일철도에서 폐지된 등급인 인터레지오(InterRegio)열차에 쓰던 물건이고,해당 구간은 현재 바이에른 지방의 사철인 Alex열차로 전환되어 운행하는 모양입니다.

지난 2015년 7월에 보름간의 일정으로 서유럽 4개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을 다녀왔었는데, 정작 저는 그때 철도를 이용하면서 행선판을 목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여 주로 고속열차를 이용했었고, 그런 열차들은 이미 차량 도입당시부터 LED 전광판을 통해 목적지를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독일을 중심으로 객차형 일반열차 출입문에 끼우는 이 행선판도 차츰 객차 연식의 도래로 인한 폐차와 LED 전광판으로의 교체 등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가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특히 유럽의 철도강국 독일은 친구가 독일철도박물관에서 구입해 온 것처럼 수집가들이나 철도 취미를 향유하는 분들의 폐 행선지표시판 매매가 활발한 모양이더군요. 

독일 이베이에서는 아예 따로 열차에 사용하던 플라스틱 행선판을 이렇게 판매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했고, 아예 별도의 카테고리로도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가격도 비교적 싼 편에 속해서 이참에 저도 독일 이베이에서 관심가는 열차 행선판을 몇 개 구매해 보았습니다.

파리 북역 (Paris Nord)발 함부르크 알토나(Hamburg-Altona) 행
야간열차(NachtZug) 행선판

사실 2015년 유럽여행을 하면서 독일을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행선판을 구입할때도 독일철도의 행선판이지만 주로 프랑스 파리을 기종점으로 하는 열차를 찾아서 구입하는 걸 목표로 했지요.

처음으로 구입한 것은 독일철도가 운행했던 야간열차 (DB NachtZug)의 행선판입니다. 프랑스 파리 북역을 출발하여 브뤼셀을 경유, 오스나브뤼크, 브레멘을 거쳐 함부르크까지 가는 열차였네요.

유럽은 워낙 넓기도 하고, 각국을 횡단하는 국제열차의 특성상 야간 침대열차 네트워크가 대단했습니다. 그 중 독일철도에서 운영하는 DB NachtZug (NZ)가 대표적이지요. 유럽을 횡단하는 침대열차가 대대적인 개편을 겪으면서 현재 폐지된 시티 나이트 라인(City Night Line : CNL)과 지금도 소수 남아있는 유로나이트(EuroNight : EN)로 통폐합되는 바람에 사용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이 표지판을 구입하게 된 것은 파리 북역의 표시 때문이었는데, 일반적으로 파리 북역은 Paris Nord로 간소화하여 표기하지 저렇게 Paris Gare du Nord라고 프랑스어로 빼곡하게 다 적어놓는 것은, 특히 독일연방철도에서 만든게 저렇게 표시되어 나온다는게 대단히 이례적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Paris Gare du Nord라고 써 있는 이 행선판을 볼 때마다 2015년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의 릴(Lille)역까지 와서 테제베 열차로 갈아타서 북역까지 도착했던 긴 여정이 생각나네요.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승강장에서 관광객의 캐리어를 낚아채가던 좀도둑을 눈 앞에서 목격했기에 뭔가 파리 북역의 이미지는 지금도 선진국 수도의 대표 철도역이라는 이미지에 맞지 않게 치안 사각지대라는 흉흉한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여행 기간 중 파리에서의 경험은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를 꼽으라면 주저않고 프랑스 파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잘 모르는 프랑스어 안내방송이 떠들석하게 들리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뒤섞인 파리 북역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파리 동역(Paris Est) 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행
인터시티 (InterCity) 열차 행선판

파리 동역(Paris Gare de l'Est)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가는 인터시티 열차의 행선판입니다. 파리 동역-스트라스부르간은 프랑스 국철 (SNCF)에게도 중요한 철도간선이지만 태생은 사철입니다. 

프랑스의 철도 자체가 국가가 건설을 주도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는 형태가 아니라 개인 자본으로 건설된 사철이었고, 파리 동역~스트라스부르간 철도는 1845년에 파리-스트라스부르 철도회사에 의해 건설되어 후에 동철도회사(Chemin de Fer de l'Est)에 의해 운영되었다가 국유철도로 합병된 것이지요.

허나 2007년부터 동유럽 LGV선 (스트라스부르 고속선)으로 인해 TGV열차가 운행하면서 이 구간을 운행하는 일반열차는 거의 도태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파리 동역~스트라스부르행 행선판은 뭔가 이상한데, 이 구간은 프랑스 국철(SNCF)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프랑스의 구간임에도, 열차의 행선판을 제작은 2005년 2월 독일철도(DB)의 뮌헨관리국에서 한 물건입니다. 

열차 등급 또한 독일에서 통용되는 특급열차인 인터시티(InterCity)라고 써 있는데, 실제 이 구간을 운행했던 재래선 열차는 프랑스 국철 SNCF의 코라유(Corail) 앵테르시테(Intercités)라서 등급은 같으나 명칭은 다르다고 봐야겠습니다.

독일 이베이를 조금 더 찾아보니, 실제 동일 구간의 프랑스 국철에서 사용하던 물건은 중간에 경유지인 낭시(Nancy)나 메츠(Metz)가 써 있고, 전혀 다른 디자인의 물건이라, 어찌보면 제가 가지고 있는 파리 동역~스트라스부르간 이 행선지 표시판은 만들어진 후에 단 한번도 실제 열차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물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파리 북역(Paris Nord) ~ 브뤼셀(Brussel) 간 
유로시티(EC) 에뚜왈 뒤 노르(Etoile du Nord)호 열차 행선판
 
이 녀석이야말로 독일제가 아닌 프랑스 국유철도 SNCF에서 사용하던 물건이네요. 파리 북역(Paris Gare du Nord)에서 브뤼셀까지 운행하는 국제열차 유로시티에 사용했던 겁니다.

에뚜알 뒤 노르(Etoile du Nord)호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북극성'이 되는데, 1924년부터 프랑스(파리) - 벨기에(브뤼셀) - 네덜란드(암스테르담)을 연결하는 역사와 전통의 국제선 열차였습니다. 오리엔트 급행열차와 같이 호화객차 태생으로, 운영사는 북철도회사(Chemins de Fer du Nord)였는데 프랑스 국철로 통폐합되었고,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운행이 중지된 적도 있었다네요.

1946년에 운행이 재개되었고, 1957년엔 1등차 전용의 유럽횡단급행(TEE)열차로 등급이 변경되었으나 1984년대에는 TEE에서 인터시티 등급으로 변경, 1987년엔 인터시티의 국제선노선인 유로시티(EuroCity)로 등급이 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특히 프랑스의 철도는 TGV로 인한 고속화에 따라 1996년에 고속철도 탈리스 서비스로 대체가 되면서, 1924년부터 달리기 시작한 역사와 전통의 에뚜알 뒤 노르호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유럽철도 특히 이 형태의 독일식 행선판은 뒷면에도 동일한 구간과 열차번호가 적혀있는데, 이것은 프랑스 국철 SNCF 형태의 행선판이라 뒤집으면 이렇게 반대 경로와 열차번호가 나오네요.

아무래도 제가 구입한 이 행선판은 에뚜알 뒤 노르호의 마지막 시기였던 1987~1996년에 사용했던 물건 같습니다. 

파리 북역발 브뤼셀(암스테르담)방면은 EC87열차. 반대로 브뤼셀(암스테르담) 발 파리 북역행은 EC82열차입니다. 이 열차번호는 유럽횡단급행시절인 TEE열차 시절부터 물려받은 열차번호더군요.

1924년부터 1996년까지 약 70여년을 운행해왔던 역사와 전통의 열차는 이렇게 행선지표시판으로만 남았습니다.

도르트문트 중앙역 (Dortmund Hbf)발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Firenze S.M.N)행 
야간열차(NachtZug) 행선판

상술한바와 같이 독일의 야간열차(Nacht-Zug)는 유로나이트(EN)와 시티 나이트 라인(CNL)으로 브랜드가 통합되면서 더 이상 쓰지 않는 등급입니다.

열차번호가 일단 다섯자리인 것을 보니 정규여객열차는 아니고 임시노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3년에 도르트문트~피렌체간을 다녔다는 파편적인 인터넷 기록 외에는 해당 열차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네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은 개인적으로 2015년 유럽여행때 추억을 가지고 있는 역이네요. 여행 일정은 베네치아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로마 테르미니역으로 곧장 가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피렌체에 꼭 가보고 싶어서 여행사에 별도로 요청을 했고, 여행 일정 중에 저만 피렌체에서 하차하여 반나절을 둘러보고 저녁에 로마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피렌체 시내를 인상깊게 둘러보고 여행의 마지막인 로마 테르미니로 가기 위해 고속열차를 기다리는데, 정시운행따위는 엿바꿔먹는 이탈리아 국철 트랜이탈리아답게 피렌체역 전광판에는 열차 지연 15분은 우습고 60분 내지 90분 지연이라고 표시된 열차도 상당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타야했던 고속열차는 고속열차답게 지연 없이 피렌체에 도착했었지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혼자 내렸을때의 두려움, 열차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던 일본인 관광객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정색하면서 North? South?를 묻다가 South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인상을 펴면서 '너도 알다시피 북쪽은 좀 Crazy하지 않냐'고 껄껄거리던 이탈리아 가죽장인 할아버지.
쿨하게 캐리어를 찾아주면서 즐거운 여행을 기원해줬던 피렌체역 캐리어 보관소 아저씨. 그리고 로마 테르미니행 열차를 기다리면서 바라보았던 피렌체 역의 번잡한 풍경.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빈 마이들링(Wien Meidling)역 -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역 간
유로나이트 (EN) 234/235열차 알레그로 토스카호 열차 행선판 
  
알레그로 토스카호(Allegro Tosca)오스트리아 국철(OBB)에서 운행하는 야간열차입니다. 원래는 빈 중앙역 출발인데 빈 중앙역의 공사로 인해 일시적으로 빈 마이들링 역에서 출도착하던 시절의 행선판이네요.

2010년대 들어와서 유럽철도의 야간열차가 사양산업으로 인식되어 독일철도에서 운행을 포기하고 시티 나이트 라인(CNL)열차 또한 2016년을 끝으로 운행을 중지해버렸는데, 이제 유럽의 야간열차는 오스트리아 국철에서 운영하는 나이트젯(Nightjet) 브랜드의 유로나이트 열차만 남았습니다.

유럽 야간열차의 대부인 오스트리아 국철은 행선판 규격이 약간 다른게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는 A4사이즈를 쓰기 마련인데, 오스트리아 국철의 행선판은 A4보다 크기가 약간 작네요. 그리고 플라스틱 판을 쓰는게 아니라 최근에는 종이에 저렇게 코팅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쇄된 종이를 코팅한 행선판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두껍더군요.

유럽의 야간열차가 다 그러하듯이 EN234/235 알레그로 토스카호도 이 열차만 운행하는게 아니라 중간중간 다른 열차와 병결하여 한꺼번에 움직입니다. 빈을 출발한 열차는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에서 독일 뮌헨에서 온 Lupus호와 연결하여 로마 테르미니까지 운행합니다. 휴가철에는 Lupus호 뿐만이 아니라 카 페리 열차까지 연결했다고 하는군요.

그런즉슨 베네치아 메스트레~로마 테르미니역 구간에서는 이탈리아 국철 기관차가 오스트리아 국철의 침대객차(토스카호)와 독일철도의 침대객차 (Lupus호)를 끌고 움직이는 기묘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실제로 EN235열차가 3개 국적의 기차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네요.

현재는 빈 중앙역의 공사가 끝나서 빈 마이들링역에서 다시 빈 중앙역으로 출도착역이 환원되었고, 운행은 밀라노 중앙역까지만 운행하는 것 같습니다.

로마 테르미니역은 저의 유럽여행의 종착지이자 뭐랄까 파리 북역을 능가하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소매치기가 많고 치안이 안 좋은 이탈리아인데 그 한복판에는 이 로마 테르미니역이 있는거지요. 워낙 흉흉한 소문들이 많아서 주변인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섞어서 불지옥 로마 테르미니역이라고 불렀는데, 정작 이 당시에는 밀라노 엑스포 기간때문에 이탈리아 당국이 주요 관광지와 철도역에 군경을 쫙 풀어버린 관계(...)로 정말 별 일 없이 로마에 입성할 수 있었네요.

독일철도의 대체열차(Ersatzzug) 행선판

유럽의 철도강국은 아무래도 독일입니다. 일단 이런 열차의 행선판을 주로 모으는 양반들도 독일인들인 것은 둘째치고 열차 운행 또한 깔끔하게 하는 편인데, 파업이나 차량고장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열차운행이 중지되어도 독일이나 스위스는 열차편 자체를 결행시키기보다는 대체열차를 투입하여 운행합니다.

Ersatzzug는 대체열차편이라는 뜻이고 2. Klasse는 2등석이라는 표시네요.  

베를린 게준트부르넨(Berlin-Gesundbrunnen) 발 뮌헨(Munchen) 행 
인터 시티 익스프레스 (ICE) 고속열차 행선판

ICE라고 하면 독일 고속철도의 상징, 전두부가 매끈하게 잘 빠진 이체에 고속열차를 생각하기 쉽지만, ICE 1005열차는 과거 Metropolitan 서비스로 출퇴근시간에 주요 역에만 정차하는 고속철도 서비스인데, 객차형 고속철도 차량으로 운행되는 차량입니다. 지금은 ICE-스프린터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보통 LED 행선안내표시기를 사용하는 이체에 고속열차 차량과 달리 객차형 고속철도 차량이라 플라스틱 행선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객차형 고속철도 차량이라고 해도 기관차나 Metropolitan 서비스로 개조된 객차는 고속화가 되어있어서 최대 220Km/h로 고속운전이 가능하니 200Km/h급의 고속철도라는 기준에 충족하므로 ICE라는 등급으로 운행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런 출퇴근용 라이너 서비스가 객차형 고속철도 차량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ICE라는 고속열차 등급이 붙은 플라스틱 행선판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리 리옹(Paris Gare de LYON) 발 로마 테르미니 (Roma Termini)행
팔라티노(Palatino) 익스프레스 열차 행선판

딱 봐도 이건 독일철도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철(SNCF)에서 사용했던 물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국철의 행선판은 플라스틱 재질이 아니라 두꺼운 마분지, 그러니까 종이 재질이더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프랑스 국철은 1990년도 초반까지 이렇게 파란색 글씨에 종이로 된 행선판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형식입니다. 적어도 이건 1980년대 물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파리 리옹역에서 로마 테르미니까지 운행하는 열차는 분명 없지요. TGV서비스로는 밀라노 남쪽으로는 운행하지 않고, 이 구간을 다니는 인터시티나 유로나이트 등급 열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열차 중간 경유지도 뭔가 수상합니다. 프랑스 샹베리(Chambery)와 국경도시 모단(Modane)을 거쳐 이탈리아 토리노(Torino)와 제노바(Genova), 피사를 경유하는 것으로 표시 되어 있네요. 보통 로마 테르미니행은 밀라노와 피렌체를 거치는데 그렇지 않고 서부 해안가를 따라 움직입니다.

이걸 판매하던 밀라노의 이탈리아인 셀러도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1890년에 운행을 시작한 로마 익스프레스(Rome-Express)가 1969년에 팔라티노 급행(Palatino-Express)로 명칭을 바꾸고 파리 리옹에서 토리노와 피사를 거쳐 로마까지 운행했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네요. 당시 열차 시각표와 경유지를 토대로 팔라티노 급행열차에 사용하던 물건인 것 같습니다.

팔라티노 열차는 2011년까지 운행하였으며 말년에는 피렌체를 경유하기도 했었습니다. 2011년에 폐지되었다가 2012년에 경유지와 열차 운영사를 바꾸어 부활했다가 2013년에 다시 폐지되었습니다.     

빈 서역(Wien Westbf)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행
유로나이트(EN) 468열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Orient-Express) 열차 행선판

이걸 구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고 하면 전설의 동방행 초호화열차로 서구의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던 전설의 열차입니다. 국내에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로 잘 알려져 있지요. 사실 Express는 급행을 뜻하기 때문에 오리엔트 급행열차라고 하는게 맞지만, 고속철도의 등장 전까지는 사실상 Express가 최고등급이었으니 특급(Limited Express)이라고 번역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에 사용되던 물건이지만 이 열차는 전설로 내려오는 초호화 열차와는 거리가 먼 물건이었습니다. 1882년 첫 운행을 시작하여 전성기때는 이스탄불까지 운행되었던 초호화 침대열차였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초호화열차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1977년 파리~이스탄불간 마지막 여행을 끝으로 사실상 로망속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끝났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1977년 이후에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각 나라의 국철 객차를 이용하여 존속했습니다. 파리 ~ 부쿠레슈티 혹은 때에 따라부다페스트간을 여전히 운행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로나이트 등급으로 파리 ~ 빈 구간을 운영했었으니까요. 물론 열차는 프랑스 국철이나 각 나라의 일반 침대열차였고, 열차등급은 유로나이트였기 때문에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 파리~스트라스부르간 LGV고속선 개통으로 TGV가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유로나이트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또한 단축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의 열차는 파리 동역에서 볼 수 없게 되고 스트라스부르까지 단축운행을 하게 된 것이죠. 프랑스 국내선 구간이 단축당했으니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운영에 더 이상 프랑스 국철은 관여하지 않게 됩니다. 이 시기에 열차 운영은 유럽 야간열차의 대부인 오스트리아 국철(OBB)에서 담당하게 되었지요.

다만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의 출도착 시간에 맞게 스트라스부르에서 파리까지 연계하는 TGV열차가 짜여있었기 때문에 파리~스트라스부르간 이동은 TGV를 통해 보완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야간 침대열차가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2009년 12월을 끝으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행선판은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폐지될때까지 사용했던 최후기 시대의 행선판입니다. 유로나이트 468열차는 2009년 12월 11일 빈 서역을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에 스트라스부르역에 도착하면서 마지막 운행을 마쳤고, 이날 저녁에 복편인 469열차가 스트라스부르역을 출발하여 다음날인 12월 13일 오전에 빈 서역에 되돌아오면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126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전성기때의 초호화열차 시절을 재현하여 1920년대의 객차를 복원하여 관광열차로 운행중인 베니스-심플론 오리엔트 급행(VSOE)열차는 여전히 운행중이기 때문에, 정작 현지의 철도애호가들은 유로나이트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마지막 운행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로나이트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1977년 이후로도 역사를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침대객차를 편성하는 수많은 유럽의 야간열차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요. 동방행 초 호화열차의 로망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고 단지 열차 이름만 살아남은 것이라고 회의적으로 보는 의견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던 1882년에 운행을 시작하여 2009년까지 운행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열차명이 들어간 행선판입니다. 흔하디 흔한 유럽의 침대열차 유로나이트의 열차라고 하지만 어쨌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니까요. 이걸 손에 넣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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