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단군이래 최대의 외교행사. 50여개국의 세계 정상들이 서울에 모여서 세계평화를 위해 논의하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개최가 50여일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서울 G20 정상회의때와 마찬가지로 외국의 정상들과 취재진이 정상회의 개최 전 하루나 이틀 전부터 한국 서울을 찾게 될 예정인데요. 모처럼 대한민국에 온 외국의 정상들과 취재진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대한민국을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면 좋겠지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가차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예술 중 어떤 것을 소개해 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한국의 건축양식이 드러나있는 서울 광화문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57에 위치하고 있는 광화문.
한국의 예술 중 왜 하필이면 건축분야이고, 그 많은 건축물중에 왜 하필 광화문이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경복궁의 정문으로 위치하고 있는 광화문은 2010년에 복원된 광화문이기에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옛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지키는 정문이라는 의의와, 서울 도심에 있기때문에 접근성이 좋다는 것, 그리고 서울의 상징물 중 하나이자 한국인에게 광화문은 지명 이상으로 뗄 수 없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온 광화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생각해보면 한국의 건축물로 외국에 소개하기에 손색이 없지 않을까요.

서울 광화문. 2006년 8월 촬영.
1395년에 처음 지어진 광화문은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광화문이라고 하면, 조선왕조의 궁궐의 정문이라는 단편적인 사실에서부터,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행정구역. 2002년 월드컵때의 광화문네거리 (세종로네거리)의 붉은 물결. 서울 중심부의 다양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지요. 이문세씨의 '광화문 연가'와 같은 대중가요를 통해서도 이미 광화문은 건축물과 지명을 넘어 한국인에게 하나의 상징성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6년 12월. 경복궁 앞을 지키고 있는 궁의 정문 광화문은 우리의 풍경 속에서 잠시 사라졌습니다.

2008년 3월. 광화문 복원공사로 인해 한동안 광화문은 우리의 풍경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1395년 처음 세워졌던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1867년에 다시 광화문이 세워졌지요.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설을 위해 광화문이 헐리게 됩니다.
문화재청은 해체된 광화문 터에서 1867년 고종때 중건한 광화문 터를 발견하고 광화문을 처음 지었던 1395년 태조때의 광화문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광화문터를 발견했기 때문에 터를 보존해야할지, 기존의 터를 이동하고 원래 자리에 광화문을 지을지 학계에서 논쟁으로 뉴스에서 보도된 적도 있었지요.
당시 문화재청의 방침은 지하철 건설때문에 지반이 약해져서 기존 터 위에 광화문을 복원하면 기초가 원래보다 48cm가 높아지고, 기초지반 48cm를 줄이면 복원된 광화문의 안전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터를 제3의 장소로 옮겨 보존한 뒤에 광화문을 복원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세 달여간의 논의 끝에, 태조 당시의 광화문 터를 그 자리 그대로에 보존하기로 하면서, 광화문의 높이는 태조 때보다 48cm 높게 복원되는 안으로 결정됩니다.

광화문 복원공사를 위한 가림막으로 예술작품 "광화문에 뜬 달"이 설치되었다.
2006년 12월에 콘크리트 광화문이 철거되고, 2007년 여름에는 세종로에서 경복궁 흥례문까지 뻥 뚫려버린 경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원공사를 위해 2007년 12월에 가림막을 설치하여 2010년까지 '광화문에 뜬 달'이라는 명칭의 작품이 가림막으로 광화문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시 태어날 광화문을 기다리면서, 광화문의 부재기간동안의 아쉬움을 덜고, 우리 시대의 광화문을 기억하고자 경복궁의 국립고궁박물관 야외에 철거된 콘크리트 광화문의 철거부재를 전시하였습니다. 현재 콘크리트 광화문의 부재는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전시하고 있지요.
지금이야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어 광화문을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고, 광화문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었지만, 광화문 광장 조성 전까지는 이순신 동상과 마찬가지로 광화문 정면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광화문의 세세한 부분과 아름다움을 1968년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던 철거된 광화문의 부재를 통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광화문을 세세한 구석까지 뜯어보았는가 싶기도 하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부재들을 보면서 세밀히 표현된 놀라움과 함께, 당시의 숨가팠던 조국 근대화 시대상을 함께 볼 수 있었지요.
그리고 콘크리트 광화문의 철거 부재를 통해 어쩔 수 없는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목조건물로 다시 복원된 광화문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광화문 여장(女墻) - 콘크리트 제작
여장은 성벽위에서 전투를 할 때에 공격과 수비를 위해서 총구의 높낮이를 규칙적으로 변화를 둔 낮은 담장이라고 합니다.광화문의 여장은 태극 8괘를 상징하고 있고, 보통 벽돌로 만들어졌다고 하는군요.

광화문 우물반자(盤子) - 콘크리트 제작
우물반자는 지붕의 구조물을 가리기 위해서 설치한 실내의 상부 천장이라고 합니다. 궁궐이나 사찰 천장에 이런 반자가 설치되는데, 보통 연꽃무늬가 사용된다고 하는군요. 우측을 잘 보시면 살짝 깨져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 진 것을 알 수가 있네요. 실제로는 목조로 제작됩니다.

광화문 내부계단 - 콘크리트 제작
문루 1층에서 누각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설치된 경사진 계단입니다. 계단 폭이 1.5m이라고 안내판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네요.

광화문 추녀 - 콘크리트 제작
광화문의 추녀는 도성이나 궁궐, 누각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우진각 지붕집 형태입니다. 전통건축의 곡선미를 표현하는 부분이 이 추녀부분이지요. 추녀 위에 기와를 올리게 되어있는데, 추녀부분만 전시되어 있어서 기와를 덮는 지붕은 콘크리트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콘크리트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네요.

광화문 귀공포 (우포 : 隅包) - 콘크리트 제작
광화문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이라고 할만한 귀공포는 지붕 아래의 장식기능이면서, 지붕하부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콘크리트로 만들었다니. 색상이 좀 바랬을 뿐, 콘크리트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함에 놀라울 뿐입니다.
동시에 당시에 '콘크리트로 이렇게 복원할 수 밖에 없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목조건물이라는 목재의 질감과 특유의 색감때문에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울까요. 산업화의 바람이 문화재 복원까지 영역을 넓여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음을 이해하면서도 콘크리트 광화문 부재의 전시를 통해 그간의 우리의 문화재 인식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광화문 주간포 (柱間包) - 콘크리트 제작
주간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한 공포의 명칭이라고 하는군요. 도무지 콘크리트로 만들었다고 하기엔 믿기가 힘듭니다. 살짝 만져보고 나서야 진짜 콘크리트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울 G20 정상회의때와 마찬가지로 외국의 정상들과 취재진이 정상회의 개최 전 하루나 이틀 전부터 한국 서울을 찾게 될 예정인데요. 모처럼 대한민국에 온 외국의 정상들과 취재진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대한민국을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면 좋겠지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가차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예술 중 어떤 것을 소개해 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한국의 건축양식이 드러나있는 서울 광화문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한국의 예술 중 왜 하필이면 건축분야이고, 그 많은 건축물중에 왜 하필 광화문이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경복궁의 정문으로 위치하고 있는 광화문은 2010년에 복원된 광화문이기에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옛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지키는 정문이라는 의의와, 서울 도심에 있기때문에 접근성이 좋다는 것, 그리고 서울의 상징물 중 하나이자 한국인에게 광화문은 지명 이상으로 뗄 수 없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온 광화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생각해보면 한국의 건축물로 외국에 소개하기에 손색이 없지 않을까요.

1395년에 처음 지어진 광화문은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광화문이라고 하면, 조선왕조의 궁궐의 정문이라는 단편적인 사실에서부터,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행정구역. 2002년 월드컵때의 광화문네거리 (세종로네거리)의 붉은 물결. 서울 중심부의 다양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지요. 이문세씨의 '광화문 연가'와 같은 대중가요를 통해서도 이미 광화문은 건축물과 지명을 넘어 한국인에게 하나의 상징성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6년 12월. 경복궁 앞을 지키고 있는 궁의 정문 광화문은 우리의 풍경 속에서 잠시 사라졌습니다.

1395년 처음 세워졌던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1867년에 다시 광화문이 세워졌지요.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설을 위해 광화문이 헐리게 됩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헐리는 광화문을 보고 "광화문이 헐리는 것은 서울의 중심을 잃는 것"과 같다며 한탄하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등의 반발로 광화문은 다행히 완전 철거였던 기존의 입장에서 1927년에 건춘문 북쪽.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석축만 남기고 광화문은 완전히 불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광화문은 1968년 3월 1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복원된 광화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광화문마저 지금은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과 그 축을 맞추기 위해 약간 동쪽으로 틀어져 원래 자리보다 14m정도 뒤에 짓게 되었다는군요.

1968년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의 한글 편액.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
지금은 복원공사중인 서울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1968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광화문 또한 목조건물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설마 아래의 석축만 보고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이나 광화문을 석조건물이라고 하시는 분도 가끔 계시는데요^^;;
그런데 1968년 당시 복원된 광화문은 무려 콘크리트로 지어졌습니다. 1960년대 당시 정부의 근대화와 공업화 방침에 따라서 문화재의 복원에도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던 시기가 있었지요. 광화문 또한 원래의 목조건물이 아니라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그렇기에 2008년까지 보아왔던 우리 시대의 광화문은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편액이 달린 콘크리트 광화문이었지요. 우리 시대의 광화문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가파른 속도와 함께했던 시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2008년 3월.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
정부에서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경복궁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20개년 복원사업을 발표하고 시행하면서 마침내 2006년 12월. 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목조 광화문을 원 위치에 복원한다는 광화문 복원계획을 발표합니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자 우리시대의 광화문이었던 콘크리트 광화문이 헐리면서 문화재청에서는 원래의 광화문 위치를 찾기 위해 발굴작업을 벌입니다.


지금은 복원공사중인 서울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이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1968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광화문 또한 목조건물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설마 아래의 석축만 보고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이나 광화문을 석조건물이라고 하시는 분도 가끔 계시는데요^^;;
그런데 1968년 당시 복원된 광화문은 무려 콘크리트로 지어졌습니다. 1960년대 당시 정부의 근대화와 공업화 방침에 따라서 문화재의 복원에도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던 시기가 있었지요. 광화문 또한 원래의 목조건물이 아니라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그렇기에 2008년까지 보아왔던 우리 시대의 광화문은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편액이 달린 콘크리트 광화문이었지요. 우리 시대의 광화문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가파른 속도와 함께했던 시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경복궁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20개년 복원사업을 발표하고 시행하면서 마침내 2006년 12월. 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목조 광화문을 원 위치에 복원한다는 광화문 복원계획을 발표합니다.

문화재청은 해체된 광화문 터에서 1867년 고종때 중건한 광화문 터를 발견하고 광화문을 처음 지었던 1395년 태조때의 광화문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광화문터를 발견했기 때문에 터를 보존해야할지, 기존의 터를 이동하고 원래 자리에 광화문을 지을지 학계에서 논쟁으로 뉴스에서 보도된 적도 있었지요.
당시 문화재청의 방침은 지하철 건설때문에 지반이 약해져서 기존 터 위에 광화문을 복원하면 기초가 원래보다 48cm가 높아지고, 기초지반 48cm를 줄이면 복원된 광화문의 안전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터를 제3의 장소로 옮겨 보존한 뒤에 광화문을 복원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세 달여간의 논의 끝에, 태조 당시의 광화문 터를 그 자리 그대로에 보존하기로 하면서, 광화문의 높이는 태조 때보다 48cm 높게 복원되는 안으로 결정됩니다.

2006년 12월에 콘크리트 광화문이 철거되고, 2007년 여름에는 세종로에서 경복궁 흥례문까지 뻥 뚫려버린 경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원공사를 위해 2007년 12월에 가림막을 설치하여 2010년까지 '광화문에 뜬 달'이라는 명칭의 작품이 가림막으로 광화문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광화문의 세세한 부분과 아름다움을 1968년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던 철거된 광화문의 부재를 통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광화문을 세세한 구석까지 뜯어보았는가 싶기도 하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부재들을 보면서 세밀히 표현된 놀라움과 함께, 당시의 숨가팠던 조국 근대화 시대상을 함께 볼 수 있었지요.


여장은 성벽위에서 전투를 할 때에 공격과 수비를 위해서 총구의 높낮이를 규칙적으로 변화를 둔 낮은 담장이라고 합니다.광화문의 여장은 태극 8괘를 상징하고 있고, 보통 벽돌로 만들어졌다고 하는군요.

우물반자는 지붕의 구조물을 가리기 위해서 설치한 실내의 상부 천장이라고 합니다. 궁궐이나 사찰 천장에 이런 반자가 설치되는데, 보통 연꽃무늬가 사용된다고 하는군요. 우측을 잘 보시면 살짝 깨져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 진 것을 알 수가 있네요. 실제로는 목조로 제작됩니다.

문루 1층에서 누각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설치된 경사진 계단입니다. 계단 폭이 1.5m이라고 안내판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네요.

광화문의 추녀는 도성이나 궁궐, 누각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우진각 지붕집 형태입니다. 전통건축의 곡선미를 표현하는 부분이 이 추녀부분이지요. 추녀 위에 기와를 올리게 되어있는데, 추녀부분만 전시되어 있어서 기와를 덮는 지붕은 콘크리트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콘크리트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네요.

광화문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이라고 할만한 귀공포는 지붕 아래의 장식기능이면서, 지붕하부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당시에 '콘크리트로 이렇게 복원할 수 밖에 없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목조건물이라는 목재의 질감과 특유의 색감때문에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울까요. 산업화의 바람이 문화재 복원까지 영역을 넓여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음을 이해하면서도 콘크리트 광화문 부재의 전시를 통해 그간의 우리의 문화재 인식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간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한 공포의 명칭이라고 하는군요. 도무지 콘크리트로 만들었다고 하기엔 믿기가 힘듭니다. 살짝 만져보고 나서야 진짜 콘크리트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밀한 단청의 묘사를 보세요.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이 저리 정교한데, 실제 목조로 복원된 광화문과 전통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당시 광화문을 건설할 때에, 전체를 콘크리트를 타설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부분과 부분으로 나누어 만들어서 최종적으로는 목재건물처럼 서로의 부분을 짜맞춰서 완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콘크리트로 건설된 광화문이었지만, 우리 시대의 광화문이라는 상징적인 의의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어쩔 수 없이 콘크리트로 복원한 당시 문화재 인식의 통렬한 반성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콘크리트로 건설된 광화문이었지만, 우리 시대의 광화문이라는 상징적인 의의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어쩔 수 없이 콘크리트로 복원한 당시 문화재 인식의 통렬한 반성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 뿐만이 아니라 서울의 상징물 중 하나인 광화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전통 건축물로서의 광화문의 아름다움과 함께, 콘크리트 광화문의 철거부재로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관광사료이자 우리의 유산이 되겠지요.

2009년 2월. 광화문 광장 조성 현장
그리고 2009년, 광화문 복원과 함께 광화문 거리를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광화문 광장 조성이 한창 진행되었습니다. 이순신 동상 뒤로 복원중인 광화문 가림판이 보이시나요?

2010년 7월. 복원된 광화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고 2006년 12월부터 시작된 광화문의 복원 사업 또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2010년 7월. 거의 4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광화문의 모습에 어찌나 반가웠던지요.

2010년 8월 15일. 90여년만에 원래 자리를 찾은 복원된 광화문
2010년 8월 15일. 광복을 기념하면서 파란만장했던 광화문이 90여년만에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상징적인 콘크리트 건축물이 아니라 전통 건축기법을 사용한 목조 광화문으로 복원되었지요.

복원된 광화문의 편액
전통 건축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편액의 모습입니다. 광화문 편액에 대한 논란은 2006년부터 많았었지요. 기존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편액을 사용해야 된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으나, 구한말 촬영된 사진을 바탕으로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디지털로 확대 복원하였다는군요.
이제 서울의 새로운 명소,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와 경복궁, 그리고 광화문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란만장한 광화문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시대상과 예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볼 때마다 저는 광화문에 내포된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예술과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한국의 건축물 : 서울 광화문
광화문 광장에서 복원된 광화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국을 이해하고 소개하기 위해 꼭 오래된 국보나 보물을 소개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화문처럼 하나의 건축물이자 지명을 넘어 한국인의 의식구조 아래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는 커다란 상징성은 조선시대때 건축된 진짜 광화문이건 1968년에 건축된 콘크리트 광화문이건, 2010년에 복원된 목조 광화문이건 그 형태와 시기를 이미 초월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는 정상들과 취재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유명한 건축물이 뭐가 있느냐"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광화문을 소개할 것이고, 파란 만장한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한 광화문의 역사를 함께 소개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9년, 광화문 복원과 함께 광화문 거리를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광화문 광장 조성이 한창 진행되었습니다. 이순신 동상 뒤로 복원중인 광화문 가림판이 보이시나요?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고 2006년 12월부터 시작된 광화문의 복원 사업 또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2010년 7월. 거의 4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광화문의 모습에 어찌나 반가웠던지요.

2010년 8월 15일. 광복을 기념하면서 파란만장했던 광화문이 90여년만에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상징적인 콘크리트 건축물이 아니라 전통 건축기법을 사용한 목조 광화문으로 복원되었지요.

전통 건축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편액의 모습입니다. 광화문 편액에 대한 논란은 2006년부터 많았었지요. 기존 박정희 대통령의 한글 편액을 사용해야 된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으나, 구한말 촬영된 사진을 바탕으로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디지털로 확대 복원하였다는군요.


광화문 광장에서 복원된 광화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국을 이해하고 소개하기 위해 꼭 오래된 국보나 보물을 소개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화문처럼 하나의 건축물이자 지명을 넘어 한국인의 의식구조 아래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는 커다란 상징성은 조선시대때 건축된 진짜 광화문이건 1968년에 건축된 콘크리트 광화문이건, 2010년에 복원된 목조 광화문이건 그 형태와 시기를 이미 초월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는 정상들과 취재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유명한 건축물이 뭐가 있느냐"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광화문을 소개할 것이고, 파란 만장한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한 광화문의 역사를 함께 소개할 것 같습니다.





덧글
Bory 2012/02/10 12:29 # 답글
포스팅 취지와는 달라서 죄송한데..콘크리트가 더 후덜덜..역시 70년대 무대뽀 노가다 스킬이란...
지금은 저짓거리 못함다. 돈 쳐들어 하고 싶어도 할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못함..
(허긴 공장제 성형장식재도 많은데 저리 수고할 이유도 없지만서두)
허긴 콘크리트 현장 거푸집 짜는 거랑 미장 기술은 옛날이 더 뛰어났져..
루리카 2012/02/10 12:50 #
광화문 콘크리트 철거부재를 보고 난 충격은 하아.. 저게 무슨 돌로 깎아서 조각한게 아니라 거푸집 떠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해도 아찔해집니다. 앞뒤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던 당시 시대상의 모습이기도 하구요.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편액과 더불어 저렇게 철거 부재를 남겨서 전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좀 더 여유로워 졌다는 것일까요.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진 콘크리트 광화문의 철거 부재는 정말 역사에 남을 현대사료네요. +ㅁ+
SiroTan。◕‿‿◕。 2012/02/10 13:16 # 답글
일단 지금의 광화문은 저도 가끔 가지만 좋은거 같아요 정말..루리카 2012/02/12 22:56 #
저도 참 좋아하는 장소랍니다.NCE 2012/02/10 15:02 # 삭제 답글
광화문이 옮겨가고 왜놈총독부가 생기면서 왜인들이 조선총독부~서울시청~남산조선신궁 으로 이어지는 선축을 기준으로 길을 파놓았기 때문에.. 지금의 길과 광화문의 축은 애매하게 뒤틀어져 있으며... 심지어는 현판논쟁까지..특히. 광화문 앞에 깔아놓은 광장은 세상 그 유래를 찾아볼수없는 뭐가뭔지 알수없는 광장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황금의 세종대왕 동상은 무슨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루리카 2012/02/12 22:56 #
광화문 광장에 대해 아쉬운 점은 사실이긴 하지.련석 2012/03/07 16:46 # 답글
글 너무 잘 읽었어요~!^^창피하게.. 광화문이 2010년에 다시 지었단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그래서 이전 광화문 건물이 콘크리트로 지어졌단 사실이 너무 충격적 이네요...)
우리 나라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너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데 저런 안타까운 사연들 갖고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네요..ㅠㅠ
루리카 2012/03/13 02:11 #
처음엔 저도 광화문이 콘크리트 건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적이었죠. 광화문 참 좋아하는 건축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