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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6월 20일
공군교육사령부 기본군사 훈련단 신병 제1훈련대대 08-4차 4중대 2소대 50번 김영재 훈련병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속사리 사서함 306-11호 공군교육사령부 정보통신학교 학생대대 30010과정 74번 이병 김영재 (7월 18일 수신종료) 2008년 06월 23일
입대 8주 후 처음 나온 휴가. 3박 4일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 앞으로 5시간 정도면 진주 교육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게 됩니다. 2008년 06월 20일
오랫만에 컴퓨터를 잡아보니 적응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 공군 663기에 입대해서 무사히 훈련소 7주생활을 잘 치루고, 입대 50일 외박이라고 부르는 위로휴가를 받아 8주만에 집에 왔습니다. 2008년 04월 27일
오래되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자는 군대에 가야해"하면서 병역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했었고, 짧게는 4월 대학교 군휴학계를 제출하면서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 간다는 사실에 걱정했다. 2008년 4월 28일부로 군입대를 앞두면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보통 군입대를 기점으로 변화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군입대를 중심으로 군입대 전이 인생 1막. 군제대 후가 인생 2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7년 2월부터 성장하여 2008년 4년까지 21년간을 보내온 인생을 생각해보면 후회도 많고 실수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인생 1막동안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군입대 직전에 그간 풀릴 것 같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 두개씩 풀리면서, 인생 1막기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군휴학을 신청하고 나니 인생 1막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루었다는 생각에 입대일을 기다리면서 정작 홀가분해졌다. 이젠 인생 1막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지인들을 만나고, 친척들을 만나고. 21년간의 나의 행적이 남겨진 장소들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인생 1막을 결산지었다. ![]() 나의 고향. 서울특별시를 남산에서 바라보면서. 2008년 4월 28일부터 2010년 6월 12일까지 내 앞에 열릴 또 다른 세상. 사회와 고립되어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규칙에 따라 지내야할 이 기간은 인생 1막을 지내온 21년만큼이나 힘들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나는 이전보다 더욱 강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부디 이 기간동안 건강하게 군 복무를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과 지인들도 건강하게 이 기간동안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이 시간만큼은 나를 위해 축복하고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축복한다. 인생 1막 21년동안 스쳐지나간 인연들과 시간들을 위해서. 21년간을 인도해주신 부모님과 신께 감사하면서, 군 입대 전 인생 1막 마지막 날을 기록한다. 2008년 04월 26일
<관련 포스트>
변화 : 2호선 이대역에서 - 2006년 7월 22일 등록 개강을 앞두고 : 다시한번 이대역을 찾다 - 2006년 8월 27일 등록 2006년 12월. 마침내 2호선 이대역 리모델링 공사가 끝났다. 나 또한 같은시기에 대전에서의 2년간의 학교 생활을 마쳤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더 변화하였을까. 어두컴컴한 이대역의 공사중인 모습은 사라지고, 반짝반짝하게 리모델링이 완료된 이대역에 내렸다. 새 역명판에 [241 이대]라고 크게 적혀진 글씨가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역명판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스크린도어에 반사되는 자화상을 응시했다. ![]()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대생의 모습으로 내 이름 세 자를 부르던 때. 그 때는 대전생활 1년차 1학기를 마치던 여름이었다. 그쪽에서 나를 먼저 알아보고, 재차 서로를 확인하며 반가움과 아련한 그리움으로 6년간의 서로간의 시간공백을 이야기로 채우면서 교회 언덕을 내려왔었다. 서로 어색한 가운데 고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답게 어느 대학으로 진학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 친구가 대뜸 이화여자대학교에 진학했노라는 말을 했을 때. 초등학교때에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존재를 기억해 준 고마움. 같은 출발선상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최고 여자대학인 이대에 진학했다는 노력에 대한 찬사, 여대와 여대생에 대한 환상아닌 환상과, 마지막으로 내가 진학한 학교의 이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책망. 분명 놀라움과 동시에 네 다섯개의 생각이 연달아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었던 모양이다. 선듯 먼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부탁에 서로간의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자주 연락하자며 신신당부 속에 구두를 또각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갔던 친구의 모습에 아마 나는 생각외로 충격을 받았었나보다. 그 이후로 종종 이 친구를 만났다. 6년, 7년간의 서로간의 시간공백을 서서히 메워가기 위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지난 시간을 위한 수다를 나누기도 했고, 모교인 초등학교를 둘이서 찾아가보기도 했으며, 기숙사에서 한번은 실시간으로 친구가 탄 버스위치를 확인하면서 문자놀이도 하였다. 재회했을 때의 어색함에서 점점 친한 친구가 되어 무슨 일이라도 툭 터놓고 말할정도로 친해졌다. 발렌타인 데이때에는 친구 챙겨준다면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중계동 사무실까지 찾아가겠다고 전화를 했을 때에 극구 만류하면서 직접 이대역으로 찾아갔었던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전생활을 하면서 이 친구로 인해 위안을 많이 얻어 생활했었다. ![]() 기존에 있던 이화교를 복개해버리고 새 정문과 새 건물을 한창 공사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함께 걷다가 정문에 다다르자 나는 친구를 불러 세운 후, 이대정문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이 때가 이화여자대학교를 제대로 사진에 남기게 된 계기였다. 한창 멋을 부릴 여대생과 함께 신촌과 이대앞 이곳저곳 카페란 카페는 다 돌아다녔었다. 여유있게 카페에서 서로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여대생다운 생활이었다. ![]()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친구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여대생이었다. 자기 목표가 뚜렷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여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해서 스스로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있다. 그러한 모습에 비해 나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였기에 신촌거리와 대학로에서 나는 '서울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당당할 수 없었다. 마치 이 장소가 내게 허락되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힘을 내기로 했다. 대학간판이 사람을 보는 잣대가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사회를 나 스스로 바꿀 수가 없었기에 나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즐거운 기억을 가득 채운 2006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면서 공사중인 이대역과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을 그리워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 한창 공부를 하면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확신이 없었을 때에. "언젠가" 희망이 찾아올거라면서 힘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읆조리던 노래가사마저도. "언젠가"라는 단어의 무한함과 막연함에 대한 잔인함을 느꼈고, 그랬기에 절망을 느끼던 그 때. 타는 목마름으로 이리 저리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는 무언가 가시적인 확신의 표시가 필요했었다. 무언가 눈으로 보여야 나의 길에 대해서도 확신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발걸음을 옮겼던 곳이 이대역이었고,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이대 기념품매장에서 이대 배지와 파일첩을 구입했다. 동경하던 장소의 표식이라도 붙잡고싶을 정도로 간절했기에 방학이었던 캠퍼스에 무작정 찾아갔었다. 만약 이 친구가 연세대학교에 진학했었더면, 연세대학교가, 건국대학교로 진학했으면 건국대학교가. 숙명여대에 진학했다면 숙명여대가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자기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 이 친구가 이화여자대학교에 진학했었기에 이화여대가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렸지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는 없다. ![]() 2006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이화여자대학교"라는 명칭이 나에게는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감수성마저 풍부했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본질대로 보지 못했다. 활기가 넘치는 이대정문앞에 다다렀어도 내 모습을 비추어보면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함께 이 곳을 걸었던 친구와의 기억이 너무나도 따스했었기에 그 기억이 너무 소중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마침 하마사키 아유미의 teens가 흘러나왔다. 그 시절이 아름다운 기억이었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천사의 날개를 가진다고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고.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슴속에 간직하겠다는 가사의 노래였다. 그 이후로 이대 정문을 찾을 때에는 이 노래만 듣게 되었다. ![]() 모든 시험을 마치고 곧장 달려간 곳 또한 이대정문이었다. 정문을 바라보면서 "정말 제가 잘 했습니까. 열심히 잘 해왔지요?"라고 울먹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 명문대는 아니지만 국민대학교에 35: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열약한 상황에서 나에게는 정말 값진 결과였다. 합격발표 후. 쌓여있었던 3년간의 서러움이 한번에 터져버렸기에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언제나 패배자였던 내가 경쟁에 승리했고, 목표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다시 한번 울었다. 마침내 계획했던 모든 것을 이룬 2008년 3월. 나는 시험이 끝난 직후 찾았던 이대정문을 다시 찾았다. ![]() 정문에 [이화여자대학교]라고 써 있던 조형물이 두달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언제나 이대정문을 가면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이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여름엔 그 조형물 내부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서 문제점이 많았다고 했다. ECC 완공이 끝나고 공사기간동안 형식만 갖춰두었던 정문을 다시 공사를 하기 위해 철거한 모양이었다. 한창 나의 선택에 가시적인 확신이 필요했을 때, 이대정문앞에 써 있던 [이화여자대학교]라는 명칭을 보아왔다. 그리고 힘을 냈었다. 이대라는 이름만 보아도 힘이 날 만큼 내겐 마법의 주문 같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워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리워할 대상이 사라졌다. 계획했던 모든 것을 마치고 다시 찾은 이대정문 앞에서 이제야 나는 언제나 동경하고 마음속으로 그리워했던 이대를 놓아줄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 그 이후부터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이대정문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 서면 친구와 즐겁게 신촌거리를 활보하던 추억의 장소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시에 한동안 초라했었던 내 과거의 모습과, 그 모습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나의 열정을 기억하는 공간일 뿐이다. 이대앞에서의 모든 시간은 이제 추억속으로 후련하게 놓아주었고, 나 또한 내가 스스로 묶었던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꾸준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앞으로 이대를 찾을 일이 생긴다면 이대앞에서의 시간과 기억과 모든 감정을 추억하면서 간절했던 기억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걸어온 두 사람 각자의 꿈과 미래의 길을 축복할 것이다. 浜崎あゆみ - teens (Acoustic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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